본문 바로가기
묵상

충격적인 갈림길(자유의지란?)

by 하진파파 2024. 6. 30.

그리스도인들은 한 악한 권세가 현재 이 세상의 군주 행세를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현 상태는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은 것입니까? 만약 일치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야말로 이상한 분이 되어 버립니다. 반면 일치 하지 않는다면, 절대적 권세를 가진 존재의 뜻에 반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권위 있는 위치에 있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가지 일이 자신의 뜻에 부합되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어긋날 수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오늘밤부터 너의 공부방을 정리해주지 않을 꺼야. 이젠 너희도 스스로 방을 정리하는 법을 배워야지." 라고 말하는 것은 아주 지각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공부방에 가보니 방이 온통 어질러져 있습니다. 이것은 어머니의 뜻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방을 잘 정리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볼때, 아이들에게 방을 어지럽힐 수 있는 자유를 준 것 역시 어미니의 뜻입니다. 이러한 일은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어떤 일을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을때, 실제로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절반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뜻한 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뜻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자유의지를 가졌다는 것은 옳은 일을 할 수 도 있고 그른 일을 할 수 도 있다는 뜻입니다. 자유 의지를 가졌으면서 그릇 행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존재들을 상상하는 이들도 있지만 저로서는 그런 존재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선해질 수 있는 자유가 있다면 악해질 자유도 있는 것입니다. 악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자유의지 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을까요? 악을 가능케 하는 것도 자유 의지지만, 사랑이나 선이나 기쁨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 또한 자유의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행복은 사랑과 즐거움의 절정에서 자유로우면서도 자발적으로 하나님과 연합하여 이웃과 연합하는데서 생겨나는 행복으로서, 거기에 비하면 지상에서 남여가 나누는 사랑조차 물탄 우유처럼 싱거울 것입니다. 바로 이런 행복을 누리기 위해 인간은 자유로워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인간들이 자유를 잘못 사용할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자유의지가 어떤 것인지 이해한다면 전에 어떤 이가 제가 던졌던 것과 같은 질문 문 "하나님은 왜 이처럼 쉽게 부패하는 재료로 피조물을 만드셨는가? 라는 질문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알 것입니다. 좋은 재료로 만든 피조물일수록 더 똑똑하고 강하고 자유로운 피조물일 수록 옳은길로 가면 그만큼 더 선해지지만 그른 길로 가면 그만큼 더 악해지는 법입니다. 동물들은 선하든 악하든 거기서 거기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동물보다 더 선해지고 악해질 수 있습니다. 천재적인 성인은 더 그렇습니다. 그리고 초인적인 영은 이 세상 그 무엇 보다 선해질 수도 있고 악해질 수 도 있습니다.

 

어두운 권세는 어떻게 타락하게 되었을까요? 여러분이 자아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갖게되는 순간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앞세울 가능성, "스스로 중심에 있고 싶어할 가능성, 사실상 하나님이 되고 싶어할 가능성" 이 생깁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지은 죄였고, 사탄이 인류에게 가르친 죄입니다. 사탄이 우리 옛 조상들의 머릿속에 불어 넣어준 생각은 그들도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 마치 스스로 자신을 창조하기라도 한 양 지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다. 하나님 밖에서 하나님과 상관없이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는 것이였습니다. 그러한 시도로부터 우리가 인간 역사라고 부르는  거의 모든 것 " 돈, 가난, 야망, 전쟁, 매춘, 계급, 제국, 노예제도 등, 하나님 외 무엇인가 다른 것에서 행복을 찾고자 했던 인간들의 길고 무서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런 무서운 시도가 결코 성공할 수 없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엔진을 처음 만들었듯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처음 만드셨습니다. 차는 휘발유를 넣어야 달릴 수 있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른 것을 넣으면 달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넣어야 달릴 수 있도록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스스로 우리 영혼이 연소시킬 연료가 되시고 우리 영혼이 먹을 음식이 되신 것입니다. 다른 연료나 음식은 없습니다. 아무리 우리 식으로 행복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해 봤자 소용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행복이나 평화를 주실 수 없습니다. 그런것은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행복이나 평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여러 문명을 건설하고 훌륭한 제도를 고안했습니다. 그러나 매번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몇가지 치명적인 결함때문에 이기적이고 잔인한 이들이 우두머리가 되었고, 모든 것을 비참한 파멸로 몰고 갔습니다. 사실상 이 기계는 망가졌습니다. 처음 얼마간은 제대로 가는 것 같았지만 곧 고장나 버렸습니다. 인간은 잘못된 연료를 넣고 달리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우리에게 해 온 짓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셨을까요? 무엇보다 먼저 우리에게 양심, 즉 옳고 그른 것에 대한 분별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느시대에나 자신이 양심에 따르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중 어느 누구도 완전히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한 특정한 민족을 택하여 자신이 어떤 하나님인가를 "하나님은 한분밖에 없으며 그는 옳은 행동을 원하신다는 것을" 수세기에 걸쳐 그들의 머리에 심어주셨습니다. 그 민족이 바로 유대민족이며  그렇게 심어주신 과정을 기록한 것이 바로 구약 성경입니다.  그런데 정말 충격적인 사건은 그다음에 일어났습니다. 유대인 가운데 한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 자기 자신을 하나님으로 자처하며 다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줄 권한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자기는 이전부터 항상 존재해 왔다고 말합니다. 또 마지막날 다시와서 세상을 심판하겠다고 합니다. 그의 주장중에는 우리 귀에 너무 익은 나머지 무심코 흘려 듣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를 용서해준다는 말, 그 어떤 죄라도 용서해준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용서라는 것은  해를 입은 사람이 해를 끼친 사람에게 배푸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나서 당신의 죄를 용서해주겠노라 라고 선언하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것은 아무리 부드럽게 표현한다 해도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행동들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바로 그런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죄가 용서 받았다고 선언 했으며, 그들의 죄에 피해를 입은 이들의 의견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스스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당사자인 것 처럼 행동하였습니다. 그것은 정말 하나님일 경우에만 이해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모든 죄는 하나님의 법을 깨트리며 그의 사랑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닌 존재가 이런말을 했다면, 역사에 등장했던 그 어떤 인물보다 자만에 찬 미친짓을 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나는 예수를 위대한 도덕적 스승으로 기꺼이 받아드리지만,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주장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다." 는 어리석은 말을 그 누구도 못하게 하기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에 불과한 사람이 예수와 같은 주장을 했다면, 그는 결코 위대한 도덕적 스승이 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는 정신병자거나 지옥의 악마일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선택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였고 지금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미치광이나 그것보다 못한 인간입니다. 당신은 그를 바보로 여겨 입을 틀어막을수도 있고, 악마로 여겨 침을 뱉고 죽일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의 발 앞에 엎드려 나의 하나님이요 나의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실제적인 결론  (1) 2024.07.02
완전한 참회  (1) 2024.07.01
삶의 목적  (0) 2024.02.17
나는 왜 이세상에 존재하는가?  (0) 2024.02.15
크신은혜  (0) 2024.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