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기본덕목

하진파파 2024. 7. 5. 12:45

제가 도덕을 세 요소로 나눈 주된 이유중 하나는 그것이 제가 하려는 이야기를 가장 짧은 시간안에 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옛 사상가들이 도덕을 구분한 다른 방식, 아주 유익한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오래된 분류에 따르면 도덕에는 일곱가지의 덕목이 있습니다. 그중 네가지는 기본덕목 나머지 세가지는 신학적 덕목이라고 하지요. 기본덕목은 문명인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려 하는 것들이지만 신학적 덕목은 대개 그리스도인들만 아는 것입니다. 신학적 덕목은 나중에 이야기 하기로 하고 지금은 기본 덕목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겠습니다.

 

기본 덕목에 해당하는 것은 분별력, 절제, 정의, 꿋꿋함 이 있습니다. 

 

분별력 이란 실 생활에 적용되는 양식을 뜻하는 말로서, 자신이 지금 어떤 행동을 하고 있으며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 인지에 대해 심사숙고 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분별력을 덕목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어린아이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해서 착하기만 하면 어리석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입니다. 대부분의 어린 아이들 자기가 관심있는 일에 관해서는 상당한 분별력을 발위합니다. 또한 사도바울이 지적했듯이 그리스도는 지성의 영역에서 어린아이처럼 되라고 하신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비둘기처럼 순결할 뿐 아니라 뱀처럼 지혜로우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바라시는 것은 아이의 마음과 어른의 머리입니다. 우리가 착한 아이처럼 순진하고 한결같으며 정 많고 잘 배우기를 바라시지만 동시에 우리의 지성은 어느면에서나 그 임무를 다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최상의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기를 바라십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그리스도인이 될까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그것은 곧 두뇌를 비롯한 자신의 모든것을 요구하는 일에 뛰어드는 것임을 미리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다행이도 이 일은 우리의 생각과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이 되기위해 따로 특별한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는 이유중 하나는 바로 기독교가 교육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절제는 불행이도 그 의미가 변질된 단어중 하나입니다. 요즘 이 말은 대게 절대 금주 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지만, 이 두번째 덕목에 절제 라는 이름을 붙혔던 그 당시에는 전혀 이런 뜻이 아니였습니다. 절제는 특별히 음주와 관련된 말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괘락과 관련된 말이였습니다.  현대에 와서 절제 라는 말을 음주 문제에만 국한해서 사용하는 바람에 생긴 큰 해악이 하나 있습니다. 음주 외 많은 부분에서도 똑같이 무절제 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따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골프나 오토바이를 자기 생활의 중심으로 삼은 남자나 옷이나 카드놀이 애완견에 온통 정신이 팔린 여자는 저녁마다 술에 취하는 사람만큼이나 무절제한 사람입니다. 물론 겉으로는 쉽게 드러나지 않지요. 카드 놀이나 골프광이 길 한복판을 쓰저려 자는 경우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겉 모습에 속지 않으십니다.

 

정의는 법정에서 통용되는 정의 이상을 뜻하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공정함 이라고 부르는 모든것을 옛날에는 정의라고불렀습니다. 여기에는 정직함이나 공평한 교환, 성실함, 약속을 잘 지키는 일 등의 삶의 모든 부분이 포함됩니다.

 

또 꿋꿋함에는 두가지 용기 " 고통속에서 버티는 용기, 위험에 맞서는 용기" 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와 가장 비슷한 현대 의 말은 아마 배짱일 것입니다. 이 덕목을 발위하지 않는 한 다른 어떤 덕목도 오래 실천할 수 없다는 것은 물론 여러분도 아시겠지요.

 

덕목과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좀더 깊은 차원의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정의롭거나 절제있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 곧 그 사람 자체가 정의롭거나 절제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구분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중요합니다. 만약 우리가 특정한 행동만을 덕목으로 여긴다면 다음과 같은 세가지 그릇된 생각을 조장하게 될 것입니다.

 

첫째, 옳은 행동을 하기만하면 (왜 그렇게 했느냐?, 기꺼히 했느냐 마지못해했느냐,  기분이 좋게 했느냐 나쁘게 했느냐, 다른 사람의 눈때문에 했느냐 그 일이 옳은 일이기 때문에 했느냐)는 문제가 안된다고 생각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기가 좋지 않을 때에는 아무리 옳은 행동을 한다해도 정작 중요한 내면의 특질이나 성품, 즉 덕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형성하는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둘째, 그저 하나님이 정하신 한 묶음의 규칙만 따른다면 된다고 생각하게 될 수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은 특정한 종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덕목은 현세에만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될 수 있습니다.내세에는 다툴일이 없을테니 정의로울 필요가 없고, 위험이 없을 테니 용감할 필요도 없으리라는 것이지요. 다음 세상에서 정의롭거나 용기 있게 행동해야 할 기회는 정말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곳에서 정의롭고 용감한 행동을 해야만 형성될 수 있는 됨됨이는 여전히 요구될 것입니다. 제 말의 핵심은, 일정한 인격적 특질을 갖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제 말의 핵심은, 이러한 특질이 그 내면에서 싹조차 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아무리 외부조건이 좋은 곳도 "천국"이 될 수 없다는 것, 즉 그들은 하나님이 주고자 하시는 그 깊고도 강하며 흔들리지 않는 행복을 행복으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