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요즘들어 사랑은 단순히 "자선"(가난한 사람에게 무엇을 주는 일) 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원래 여기에는 더 넓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랑은 "기독교적 의미의 사랑" 을 뜻합니다. 기독교적 의미의 사랑은 감정이 아닙니다. 감정이 아니라 의지의 상태로서,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자연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남에 대해서는 배워서 익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자신을 좋아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이 잘되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이웃을 기독교적으로 사랑하는 것과 그들을 좋아하거나 그들에게 애정을 느끼는 것은 아주 다른일입니다. 호감이나 좋아하는 마음이 절로 생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죄도 아니고 덕도 아닌 것처럼,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역시 죄도 아니고 덕도 아님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감정은 그저 하나의 사실일 뿐입니다. 물론 이런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죄가 되기도 하고 덕이 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좋아하는 마음이나 애정이 절로 생기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비교적 쉽습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한 사람들을 많이 좋아하는 것은 우리의 정상적인 의무입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마음이 사랑에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한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그 외의 사람들을 사랑없이 대하거나 부당하게 대하지 않도록 아주 예민하게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과 그를 참으로 사랑하는 일이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도 생깁니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 맹목적인 애착을 가진 어머니는 그 자연스러운 애정때문에 아이를 망칠 위험이 있습니다. 즉, 자신의 애정본능을 채우려다가 이이가 나중에 누려야 할 참 행복을 희생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모두에게 주어진 법칙은 아주 간단합니다. 자신이 이웃을 사랑하나 사랑하지 않나 고민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그냥 그들을 사랑한다 치고 생동하십시오. 그러면 곧 위대한 비밀을 하나 발견할 것입니다.어떤 사랑을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면, 얼마지나지 않아 진짜로 그를 사랑하게 된다는 비밀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싫다고 해서 상처를 주면, 점점 그가 더 싫어집니다. 그러나 싫은 사람이라도 잘 대해주면 점점 덜 싫어집니다. 나의 행복을 바라듯 그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잘해준다면, 그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더 그를 사랑하게 될 것이며, 아니면 적어도 덜 싫어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몇면 사람들만 친절하게 대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친절하게 대하려고 애쓰며, 그렇게 하는 가운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자기가 좋아하게 되리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좋아하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선과 악은 모두 복리로 증가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과 제가 매일 내리는 작은 결정들이 한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아주 작은 선행을 하는 것은 마치 전략적 요충지를 점령하는 일과 같아서, 몇 달 뒤에 꿈도 못 꾸었던 승리를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반면에 오늘 겉보기에 사소한 정욕에 빠지거나 화를 내는 것은 적에게 고지나 선로나 교량을 내주는 일과 같아서, 바로 그 길을 통해 적의 공격을 받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서로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해야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데에 종종 난색을 표합니다. 자기 마음속에서는 그런 감정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대답은 똑같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치고 행동하십시오. 가만히 앉아 억지로 사랑의 감정을 만들어 내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만일 내가 하나님을 진정 사랑한다면 무엇을 할까?" 라고 스스로 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래서 떠오르는 일을 가서 하십시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보다 훨씬 더 편한 마음으로 생각하 수 있는 주제 입니다. 끊임없이 경건한 감정만 느끼며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살사 그렇게 살 수 있다 해도, 감정은 하나님의 주된 관심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든 인간을 향한 사랑이든, 기독교적인 사랑은 의지의 문제 입니다. 하니님의 뜻을 행하려고 노력한다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는 계명에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사랑의 감정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감정을 만들어 낼 수 없으며, 또 우리에게는 이런 감정을 달라고 요구할 권리도 없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할 중요한 사실은, 우리의 감정은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이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의 죄나 무관심에 지치는 법이 없습니다. 그 사랑은 우리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하는 한이 있더라도, 또 하나님께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의 죄를 치료했다는 결심을 완수할 때까지 단 한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