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무엇이였을까요? 그는 무엇을 하려고 세상에 온 것입니까? 물론 그는 가르치려고 왔습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이나 다른 기독교 저술들을 찾아보면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계속 이야기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가 이땅에 온 주된 목적이 고난받고 죽임당하기 위해서 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론에 따르면, 하나님은 자신의 자리에서 이탈하여 죄를 얻게 된 인간을 벌하고자 했으나 그리스도가 자원하여 인간 대신 벌을 받음으로써 우리를 사면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제가 말하려는 핵심은 아닙니다.
제가 나중에 알게된 것은 이 이론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이론도 그것이 기독교는 아니라는 점 이였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어떤방식으로든지 간에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바른관계를 맺게 해주며 새로이 출발하게 해 주었다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이야말로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무언가가 바깥에서부터 우리 세상으로 뚫고 들어온 역사의 지점이라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물을 수 있겠지요. 그 대답은 쉽습니다. 음식이 어떻게 영양분을 공급하는지 정확히 모르는 사람도 밥을 먹을 수는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가 하신 일이 어떻게 효력을 갖게 되는지 모르는 사람도 그 일을 받아들일 수는 있습니다. 사실 그 일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그 일이 어떻게 효력을 갖는가에 대해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죄를 위해 죽임을 당했으며, 그 죽음이 우리의 죄를 씻어주었고, 그가 죽음으로써 죽음의 세력이 힘을 잃었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것이 공식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입니다. 우리가 믿어야 하는 바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어떻게 이 모든 효력을 갖게 되느냐에 대한 이론들은 제가 볼 때 아주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그 이론들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경우 얼마든지 무시해 버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설령 도움이 된다해도 실물자체와 혼동해서는 안되는 도식이나 도해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항복하는 과정을 회개라고 부릅니다. 회개는 장난삼아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단순히 굴욕을 감수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자기의지를 버린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자신의 일부를 죽인는 것, 일종의 죽음을 겪는 것을 뜻합니다.
이 회개, 즉 자발적으로 자신을 낮추며 일족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로 찾으시기전에 먼저 요구하시는 사항이 아닐뿐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면제해 줄 수 있는 일 또한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회개란,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표현법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고 당신께 돌아가게 해 주소서" 라고 구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런 일은 당연히 일어날 수 없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반드시 회개를 거처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회개의 필요성을 주는 그 악함이 동시에 우리를 회개할 수 없게 만든다는데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회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대체 어떤 뜻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은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조금 넣어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는 자신의 추론 능력을 우리에게 조금 빌려주셨고, 그래서 우리는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조금 넣어주셨고, 그래서 우리는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 우리는 하나님이 그 본성상 절대 하시지 않는 일에서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에는 들어 맞는 요소가 하나도 없습니다. 즉, 하나님의 인도가 가장 필요한 이 길은 하나님이 본성상 한번도 가 보신 적이 없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가지고 있는 것 만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다고 가정한다면, 그 사람만큼은 우리를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인간임으로 자기의 뜻을 포기할 수도 있고 고난을 겪을 수도 있으며, 죽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이므로 모든일을 완전하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 과정을 거칠 수 있으려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이 과정을 거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하실 수 있으려면 인간이 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지성의 바다에서 물방울이 떨어져야 비로소 우리가 생각 할 수 있는 것처럼 , 하나님의 죽음을 나누어 가질때만 우리는 회개라는 죽음을 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지 않는 한 우리는 그의 죽음을 나누어 가질 수 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이 되지 않는 한 죽으실 수 없습니다. 이것이 그가 우리 빛을 갚으셨으며 그로써는 전혀 겪을 필요가 없는 고통을 우리을 위해 겪으셨다는 말에 담긴 뜻입니다.
이것이 대속이라고 부르는 것을 이해하는 저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하나의 그림에 지나지 않는 다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이 그림을 실물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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